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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엄마 방

겨울맞이단상

by 향유엄마 2018. 11. 30.
“고독한 동굴을 너의 아비로 삼고, 정적을 너의 낙원으로 만들라“
티베트의 성산 카일라스에 은거했던 밀라레파의 게송 한구절이다.
쐐기풀만 먹으며 굴속에 은거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득도한 밀라레파는 가객이자 부처로 칭송받는 성인이라고 한다.

 가을이 깊어져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일상을 돌아보니 농사철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보다 더 버거운 나날인 듯하다.
귀에 이상이 생겼다. 계속 산위에 있는 듯이 귀가 먹먹하고 가끔 어지럽다. 피곤한 일상이 극으로 가있던 어느 날엔 붓기가 계속되고 얼굴에 열감이 있어서 살짝 염려는 하고 있던터라 이번에는 병원을 찾았다. 코에서 귀로 연결되는 관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평생 안 먹던 양약을 먹고 있다. 하루에 세 번을 챙겨서 찾아 먹기가 바쁘다. 약을 먹어야하니 가끔 건너뛰고 싶은 끼니도 꼬박꼬박 챙겨먹게 된다. 피곤한 일상이 원인이라고 하니 가끔 쉬어줘야 한다며 낮잠도 잔다. 밤엔 12시를 넘기지 않고 잠들려고 노력한다. 읽고 싶던 책을 새벽까지 쪼그리고 앉아 읽던 것도 반성이 되어 그 또한 그만둔다. 저녁에 남편과 포도주 한잔씩 마시던 것도 그만둔다.
내 일상에서 건강을 챙기는 방법을 돌아보니 별거 아니다.
그동안 안하던 것을 하고, 하던 것을 안 하면 되는 거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이웃새댁이 며칠 통증이 계속되어 검사를 하러 갔다가 입원을 하게 되었다. 찾아가는 것도 부담이 될듯해 전화통화만 꾸준히 한다. 본인은 갑자기 한량이 되어 평소에 못 자던 잠을 푹 자고 뒹굴뒹굴한다며 웃는다. 그 와중에도 여유가 있다. 기특하고 예쁘다. 계속될 치료와 수술이 코앞에 있는데도 담담하다. 늘 착하고 착해서 마음가득 고맙고 안쓰럽기만 한 동생이었는데 기도를 드리다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도한가지라 고요시간에 기도를 드린다.

 어느덧 시골 살이 20년을 꽉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한곳에서의 삶이 오래되니 무언가가 자꾸 늘어난다. 아는 사람, 하는 일, 많은 약속들, 많은 부탁들, 찾아오는 사람들, 들어오는 선물들, 그로인해 날마다 바빠지는 나의 하루 ...... 가끔 버겁다고 느껴지는 그런 하루 말이다.
 요즘 읽고 있던 책에서 알게 된 밀라레파의 동굴이 문득 떠올랐다.
게송을 읊을 것도 아니고, 명상을 할 것도 아니고, 깨달음을 얻을 것도 아니고, 득도를 할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숨 쉬고 있는 주변을 고독한 동굴과 정적이 감도는 곳으로 여기며 지금 여기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묵묵히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도 여전히 약속이 있고 역할이 있고 저녁 없는 삶이 이어진다.
변함이 없는 분주한 일상이지만 내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을 낙원이라고 여기며 노래하듯, 기도하듯 살아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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