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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네 글과 자료

상농은 토양을 가꾸고 하농은 열매만 가꾼다

by 박종관 2015. 9. 6.

2011년, 겨울의 일이다.

겨울을 맞이하는 그해 겨울, 나는 포도밭에서 일이 바빴다. 포도밭의 포도나무를 베고, 가설을 철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해 겨울 우리 포도나무들이 동해로 많이 얼어죽었다. 그저 몇나무 죽은 것이 아니라 포도밭 한밭떼기 대부분 나무들이 동해피해를 입었다.

그 해봄, 새순이 나오지 않는 포도나무들을 바라보며 농부로서 마음이 참담했다.

왜 우리 포도나무들이 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많이 얼어죽었을까?

외부적 요인으로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날씨 이유도 있고, 우리 포도나무들이 20년이 넘은 고령의 나이 였기에 더 피해가 유난했던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귀농해서 십여년간 나름 유기농을 한다고 했던 자부심마저 내려놓고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물음앞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람은 절벽끝에서 진지해지고, 솔직해진다고... 폐농에 가까운 위기 앞에서 다시 농사의 근본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

 

농부로서 창피한 말이지만, 작물이 추위에 쉽게 얼어죽는다는 것은 작물이 건강하지 못하고, 면역력이 약하다는 이야기일것이다. 그리고 작물의 건강성은 결국 토양의 건강성과 직결된다. '건강한 땅'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땅', '지력이 높은 땅'이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일것이다.

내 농사방식도 돌아보면 건강한 땅을 만드는 노력보다는 작물이 필요로하는 양분 공급 위주의 시비방식이였다. 그것이 관행재배하는 분들처럼 화학비료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깻묵,쌀겨,유박 등등 자연재료로 맞춘다는 것이 다를 뿐이였다. 양분공급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흙에 양분이 많다는 것과 땅이 건강하다는 것은 비슷한 말 같지만 촞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이다. 사람으로 보자면 '힘이 센 사람, 몸이 건장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은 연결점이 있는듯 하지만 다른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한가지 반성은 연수가 쌓일수록 점점더 농사가 인스턴트화 되어 간다는 것이였다.

옛어른들 말씀중에 ‘농사의 반은 퇴비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만큼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 직접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는 의미일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첨단(?) 농업은 간편하고 빠르고 쉽다. 20키로 푸대 거름부터 시작해서 온갖 상품화된 약재들... 관행재배는 물론이고 친환경농업 영역도 그 자재 원료가 천연원료라는 것 외에 별 다를바 없다.

우리가 돈만 주면 쉽고 간편하게 먹을수 있는 인스턴트 온갖 음식들처럼, 농사를 짓는데도 돈만 주면 제품화된 온갖 좋은 자재를 구할수 있다. 그러한 제품화된 자재들이 효과들도 좋고, 좋은점도 있다. 그러나 점점더 쉽게 농사를 짓고 싶어지고, 그래서 점점더 그런것에 의존도가 높아져간다. 그리고 그 결과 농부의 정성과 정신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만드는 과정을 모르니 자재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용도 부족하고, 더욱이 농사비용도 높아져간다.

 

지금까지 농사지은 소중한 포도밭을 그 해 겨울 어쩔수 없이 철거하면서.. 농부로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었다. 내 나름의 농사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반환점의 시기라고 믿었다.

 

 

건강한 땅을 만들기 위해 내가 찾은 것은 건강한 퇴비였다.

그 다음해부터 포도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나온 포도가지들을 산더미처럼 모았었다. 내 밭에서 나온 양 외에도 마을의 어르신들 밭에서 나오는 포도가지들을 모을수 있을만큼 모아봤다. 그리고 마을 형님과 함께 잔가지 파쇄기를 빌려서 가지들을 파쇄해서 톱밥을 만들었다. 그 톱밥을 주원료로 그밖의 포도즙 짜고 나온 포도즙 찌꺼기들, 뒷간에서 나온 똥과 우사에서 나온 소똥, 쌀겨, 깻묵 등 농사 부산물들, 거기에 산에서 나오는 부엽토를 수분을 맞추며 골고루 섞어서 퇴비를 만들었다.10여일 후, 퇴비속 온도계가 가리키는 눈금과 같이 70도가 넘는 호기성 고온발효를 하고, 퇴비속에는 하얗게 방선균들이 번식한다. 이것은 우리가 메주 띄울때 피는 하얀곰팡이와 같은 것인데 토양속 병원균들을 억제하는 천연 항생물질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곰팡이들이다.

그 이후에 온도가 떨어질때쯤 되어서 열심히 정성껏 3번 뒤집어주다 보면 긴겨울이 지나갔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톱밥으로 만든 퇴비는 땅의 유기물함량을 높혀주고, 지력을 높여주는데는 어떠한 재료의 퇴비보다 최고의 퇴비이다. 10년을 내다보고 땅을 살리는 첫단추를 늦게 다시 끼운 셈이다. 그 이후로 올해 봄까지 4년간 톱밥퇴비를 만들어서 밭에 매년 넣고 있다. 한번 만들면 50톤 정도 만들어서 밭에 넣으니.. 300평당 6톤~7톤정도 양은 매년 넣었다.

 

거기에다가 유기농 농사 짓는답시고 포도밭에 풀을 키우며 살고 있다. 마을 어른들은 밭에 풀을 키운다고 기겁을 하시고, 그래서는 농사가 안된다고 훈계도 해주신다. 실질적으로도 비닐멀칭을 한밭과 그냥 초생재배를 한 밭을 비교한 실험 데이터를 보더라도 초생재배한 밭보다 비닐멀칭을 한 밭이 수확량이 평균 30% 더 많다. 포도농사뿐만 아니라 고추농사든 어떤 농사든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수긍을 할 것이다.

수확량에서 이렇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초생재배를 고집한다.

처음에는 신념과 의지로 풀을 키웠다. 유기농을 삶의 가치로 여긴이상 나에겐 풀을 깎는 제초작업이라는것은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제였다. 흔히 풀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풀은 없애야만 하는 나의 적군같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최근들어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3000평 포도밭 풀을 깎으면서도 어쩔수없이 하는일이 아니라 즐겁게 일을 한다. 단순히 풀을 깎는 것이 아니라 토양을 가꾼다고 생각한다. 단지 머리로만의 이해가 아니라 내 온 몸이 그렇게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뀐 내 모습을 보며 이제사 농부의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더 적극적으로 호밀같은 녹비작물도 이용한다. 가을에 호밀을 밭고랑 사이에다가 매년 뿌렸다. 땅속 깊이 직근으로 뻗는 호밀뿌리를 통해서 딱딱해져 있는 땅속 경반층을 뚫어주고, 호밀뿌리가 죽으면 땅속 깊이 유기물을 공급하고, 공극을 늘려 공기가 들어갈수 있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점은 포도밭 전밭에 호밀을 키우면 포도나무와 양분과 수분 경합이 일어나서 포도나무 수세가 많이 떨어진다. 특히 나무가 어린 나무일수록 더욱 심하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호밀 씨앗을 뿌릴 때 밭 고랑 사이에다가 줄뿌림 형식으로 뿌려서 나무와 최대한 간격을 띄어주고, 나머지 이랑에는 자연초생으로 자연스럽게 온갖 풀을 키운다.

 

또한 요즘 들어 나는 삶 주변에서 구할수 있는 것들로 내 농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직접 만들어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지금의 대부분 농사방식은 제품화 되어있는 자재들을 쉽게 사다 쓰는 인스턴트 농사가 대세이다. 돈만 주면 우리가 유기농 된장까지 쉽게 사서 식탁을 차릴수 있는 것과 같이, 돈만 주면 친환경 농자재들도 쉽게 구할수 있다. 쉽고 간편한 것에 길들여진 나의 농심... 이제 직접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드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나의 농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재들을 내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만드는 습관을 붙이고 있다.

퇴비를 시작으로 온갖 농사부산물로 만드는 천연액비, 천연 살균제, 살충제까지... 가능한한 내가 만들어 쓸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매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두해만에 농사가 갑자기 잘되거나 하진 않을것이다. 사람몸의 체질이 좋은 음식 몇일 먹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5년, 10년이 지나서... 서서히 건강해지고 온전해진 땅은 분명히 농부에게 건강한 농산물로 보답해 줄 것이다.

구체적인 데이터로도 토양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매년 토양시비처방서를 통해서 토양의 변화를 체크하고 있는데, 매년 토양의 유기물 함량이 증가하고 있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포도밭을 2006년도에 구입을 했는데, 처음 검사 했을 때 우리나라 평균 유기물함량인 2%였었다. 그러한 땅이 목질퇴비와 초생재배로 인해서 2011년 4.5%, 2013년 5.5%, 2014년 5.8%, 올해 2015년는 6.4%까지 올라갔다.

이 수치들로 나타나는 토양 유기물들이 좀더 토양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서 토양의 부숙으로 변화되고 토양화 된다면 정말 내가 바라는 건강한 토양을 멀지않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집 거실에 액자로 글 한귀가 붙어있다.

‘상농은 토양을 가꾸고, 하농은 열매만 가꾼다.’

어찌보면 커다란 탐스러운 열매를 만들려고 하는것, 더 많은 열매양을 수확할려고 하는 것은 농사꾼이면 기본적인 바램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서 열매들을 더 크게, 더 많이 키우려고 비료와 농약 더 나아가 호르몬제까지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바램을 넘어 인간의 욕심이다.

미국 연구자료에 보면 1960년에 재배한 농산물의 영양분과 현대 재배된 농산물의 영양분을 비교한 결과 현재의 농산물의 영양소가 지난 과거에 재배된 농산물의 평균 50%정도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 농업 기술은 더욱 발전했고, 지금의 농산물들이 지난 과거보다 좀 더 외관상으로는 상품성있고 탐스러워졌지만 그 생명력과 영양분은 더 쇠퇴했다는 이야기이고, 위에서 말한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유기농을 한다고 하는 나 또한 이러한 물음앞에서는 많이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나는 진정 생명력 넘치는 포도를 키우고 있는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해답은 토양에 있다.

 

(2015.농촌과 목회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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