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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네 글과 자료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by 박종관 2016. 1. 26.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박종관

 

귀농하기전 내 20대 젊은 날의 막연한 꿈은 마을 이장이 되는 것이였다. 그땐 마을이 무엇인지, ‘이장이 무슨일을 하는지, 기껏해야 옛드라마 전원일기 수준의 막연한 이상이였지만, 막연하게나마 농촌에서 땀을 흘리며 살면서, 이장완장을 차고 오토바이 타고 논밭을 누비며 마을공동체를 섬기고, 이끄는 마을 이장이 되고 싶었었다.

어찌보면 그때 당시는 뜬구름 잡는듯한 꿈이였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보면 결과적으로 그 뜬구름 잡던 꿈이 이루어져 벌써 마을이장 4년차를 맞이하니 나는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다.

 

 

마을 적응하기
그런 허황된 꿈을 꾸었던 내가 우여곡절 끝에 귀농을 하고 농촌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귀농초기에는 20대의 새파랗게 젊은 청년 부부로서 마을분들은 한없이 멀고 어려웠었다.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마을 어른들은 아버지벌, 할아버지벌 되니 일단 도시 농촌간의 문화적 간격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간격 또한 만만치 않았었던것 같다. 거기에 연고없는 경상도땅에 내려와 지역 어르신들의 경상도 사투리대화말을 육십퍼센트 밖에 못이해하니 ?”하며 자꾸 되뭇게 되고, 나중엔 자꾸 되뭇기도 죄송해서 ~ ..”하며 이해한척 그냥 넘겨짚고 넘어가기도 했었다. 마을행사가 있어서 아내랑 같이 마을회관에 가면 나또한 마을 어르신들 틈속에 앉아있는것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참 어려운 자리였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보다도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뜨내기마냥 살아왔던 사람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들어가 살다보니 처음에는 도시 수배자라는 오해까지 샀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해, 한해 마을에서 신뢰를 쌓아가고 마을의 한구성원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는 나름의 작은 노력들이 쌓였었던것 같다.

 

첫째, 다른건 몰라도 인사는 잘했다. 흔히 경험담에서 나오듯이 인사만 잘해도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둘째, 이따금 홀로사시는 할머니들의 손발이 되어드렸다. 형광등 갈기부터 장날 함께 모셔다 드리기 등 여력이 되는 한도내에서 도움이 되어드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도움을 더 많이 받은셈이다. 그분들이 우리 텃밭선생님이 되어주셨고, 일꾼들이 되어주셨다.

셋째, 마을 큰행사때 얼굴을 비추고, 마을 공동부역때는 함께 일하고, 눈오는날 집앞 눈치우는 김에 좀 더 마을길도 치웠다. 결과적으로는 마을분들 전체앞에서 존재감을 가장 크게 나타낼수 있는 시간이였던것 같다. 날수로 따지면 일년에 3,4일을 내가 몸담고 있는 마을일에 쓴다고 아예 편하게 생각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반듯한(?) 마을 새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던 계기가 되었다.

넷째, 마을분들 중 내편이 되어줄 몇분을 만들었다. 세부적으로는 마을 2~3분정도와는 좀 친하게 왕래하면서 그분들을 통해 마을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더나아가서 마을과의 관계에서 그분들이 중재 역할을 해주시게 되었다.

다섯째, 내가 밑지고, 내가 양보한다. 그러나 최종경계선을 긋는다. 원주민과 이해관계가 걸렸을땐 일차적으로는 내가 무조건 양보한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슷한 결정들이 같은 상대에게서 반복된다든지, 이러한 내 태도를 상대방이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때는 나름 용기를 내어서 어떤식으로든 상대방에게 내 경계를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내가 좀 더 마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의 노력을 하면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관계는 풀린다. 도시이건 농촌이건 모두 사람사는 곳이고, 진심은 진심으로 결국 받아들여진다고 나는 믿는다.

농촌은 지역 공동체적 사회이기 때문에 좋은 노력이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욕심이든간에 어떤식으로든 돌고 돌아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을 이장이 되어

마을에서 6년간의 새마을 지도자를 거쳐 마을 이장이 되었다. 이장이 되고 초기에는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 잘 알기에 마음이 자꾸 긴장되고 위축되었었다.

나는 연고도 없이 들어온 외지인에다가, 그것도 농촌에선 새파랗게 젊은 나이이고, 거기에 이미 지역에선 되지도 않는 유기농농사 짓는다고 소문이 나있을 정도로 농사로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가지 중점을 두고 마을일을 추진한 결과 천천히 좋은 평을 얻게되고, 그게 다시 내게 돌아와서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 마을에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강조하고 정보를 최대한 공유했다.

마을 운영회의를 자주 소집하고 투명하게 소소한것까지 합의 끝에 결정하게끔 만들었다. 농촌에는 아직도 목소리 큰사람이 갑이되는 것이 현실이다. 마을 포장공사든 보조사업이든 큰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전히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절차적으로는 많이 공정하게 개선되가고 있다.

* 이장에게 주어지는 알림이나 정보는 기존 게시판과 앰프방송 뿐 아니라 문자서비스를 제공해서 신속하고 누락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농촌의 가부장제적 분위기 속 기존의 남성들 위주의 연락망이 아닌 여성분들 연락처까지 모두 포함시킨 마을주소록을 격년으로 갱신해서 배포하고 있다.

* 마을의 동제나 대보름잔치 등 전통행사를 복원하고 마을여행 및 영화감상 등 마을의 화합과 단합을 추구하고 있다.

* 마을 풍물패를 조직하고 풍물강습을 시작해서 마을의 활력을 도모하고 있다.

 

 

마을에 젊은 새로운 식구들이 들어오다.

농촌에 먼저 자리잡고 살아가다보니, 이래저래 인연으로 우리주변으로 새로운 식구들도 많이 자리잡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분들이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있지만, 30~40대 연령의 가족이 몇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분들이 기존에 아이가 있거나, 새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마을의 평균 연령대를 확 낮춰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왼쪽 도표는 현재 우리 마을 인구 분포도인데 60대 이상 어르신층 비율이 당연히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10~50대 유아부터 젊은층 비율도 일반 농촌평균 보다는 높게 되었고, 어느정도 비율적으로도 골고루 배치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어르신 중심이던 주민들의 인식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마을회관이 곧 노인정이라고 생각했던 인식들이 서서히 바뀌어 아기들과 젊은 새댁들이 함께 공유할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고, ‘마을의 미래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른들이 다음세대에 대한 상상을 하고 이야기를 할 정도 분위기는 바뀌게 되었다.

거기에 이 젊은 세대들이 마을행사나 마을부역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줌으로서 마을활력에 크게 기여하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점점더 마을 분위기가 활기가 생기고 단합도 잘되어져서 그 결과 2015년도 면민체육대회 종합 1, 백화산 축제 마을대항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주시 선정 귀농하기 좋은 마을로 선정되는 일도 생겼다.

 

 

 

지속가능한 정양리를 위하여...

몇일전 마을총회를 했다. 그리고 3년의 마을이장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그날 총회를 통해서 연임에 대한 재신임을 받았다. 그래서 새로운 3년의 이장 임기를 다시 시작한다.

지난 3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마을주민들이 해주셔야겠지만, 내 나름 확신을 갖는것은 이 부족한 이장을 믿어주시고 신뢰해주신다는 것. 그것 하나 부여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2차 이장 임기를 의욕있게 시작해려고 한다.

재신임 받은 후, 2차 이장임기를 시작하면서 이장으로서 나름의 마을에 대한 비전과 포부를 말씀드렸다.

 

"지속가능한 정양리 마을 함께 만들기"

 

1. 균형된 세대 형성과 세대간 교류와 상생을 이루자.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1차적으로는 구성원의 연속성이 있어야한다는것. 지금까지 젊은 가정이 많이 귀농해서 일반농촌보다는 다양한 연령세대층이 형성되어 있다는것이 우리마을의 큰장점인데.. 갓난아기부터 80 어른까지 더욱 골고루 세대가 형성되고 세대간의 교류와 상생이 이루어지는 마을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2. 정양리 마을안에 다양한 품목의 농사를 도전하고 공동체적 수익모델을 찾아보자.

우리 마을 주민들은 거의 전업농으로서 포도농사를 주로 지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몇십년간 그덕분에 소득을 만들며 지역발전을 이루며 잘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그러한 시대도 한계점에 온것같다. 무분별한 수입개방과 국가적 저성장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의 주소득원인 포도 작물의 시장가격은 하락세로 고질적인 상태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 우리가 눈을 돌려 자급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품목의 농사들도 도전해보고, 그러한 다양한 품목을 가지고 마을기업 형태의 공동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들어 보는것도 대안이 될수있겠다.

 

3. 자급 자족 형태의 마을 공동체를 함께 만들자.

마을공동체 안에서 서로 누리고 즐길수 있는 문화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보자. 기존에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대보름잔치 같은 마을전통행사를 더 적극적으로 살리고, 새로 조직된 마을 풍물패도 더 열심히 배워보자.

거기에 작은 사랑방 모임들 (아기엄마들 모임이나 독서 모임, 바느질 모임 등등)을 필요에 따라 필요한 사람들이 만들어 보자.

 

농번기를 중심으로 한 마을 식당, 마을 밥상도 구상하고 조율중에 있다. 마을에 나는 생산품으로 자급형 공동식당을 꾸려보는것도 마을내 일자리 창출과 농번기때 가사일 경감 효과, 거기에 마을 공동체성 촉진 등 새로운 마을 활력이 될 것이다.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요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이재명 저)라는 문구가 요즘 가슴에 꽃힌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 평화, 생태, 공동체 등등 삶의 가치들, 대안적 가치들을 우리가 구호를 외치고 알리고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대안적 가치들을 내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고, 가장 작은 단위의 기초 공동체인 마을과 지역에서 조금씩 실현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실천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언어와 문자로도 변화되지만, 작더라도 살아있는 실체, 모델을 보고 변화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이 꼬리도 아닌 꼬리털 하나 정도 되겠지만, 혹시 아나? 코리털 하나 따갑게 떨어져서 호랑이 몸통을 흔들 수 있을지... 하하.

 

                                                                                                 (2016.1.18.정농회 연수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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