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동작은도서관 이야기 (농민신문 2017년.12.20)

2017. 12. 24. 08:25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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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지진, 당신의 고향이 사라진다"

2017. 11. 12. 23:33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대구mbc 특별다큐멘터리
"인구지진, 당신의 고향이 사라진다"

마을소멸. 지방소멸 이야기 주제로 심도있게 촬영을 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그중에 저희 마을 이야기와 저희 인터뷰가 대안의 사례로 나오고요..
유투브로 다시 보실수가 있습니다^^

https://youtu.be/QStOW4NKstU
https://youtu.be/QStOW4NKstU

유튜브에서 인구지진 시청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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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5. 농민신문에 실린 저희 부부이야기입니다^^

2017. 3. 15. 19:47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2017년 3월 15일자 농민신문에 실린 저희 부부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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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신문 '나는 농부다' -박종관.김현부부

2016. 11. 27. 17:29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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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영남일보 '정양리 이야기'

2016. 11. 5. 07:59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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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향유네 모습 (2006년 kbs 싱싱일요일 방송)

2016. 10. 18. 10:01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2006년 향유네 모습..

딱 10년전 우리네 모습을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2006년 9월 kbs 싱싱일요일 제61회 '포도밭 작은 가족' 향유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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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2016. 1. 26. 01:00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박종관

 

귀농하기전 내 20대 젊은 날의 막연한 꿈은 마을 이장이 되는 것이였다. 그땐 마을이 무엇인지, ‘이장이 무슨일을 하는지, 기껏해야 옛드라마 전원일기 수준의 막연한 이상이였지만, 막연하게나마 농촌에서 땀을 흘리며 살면서, 이장완장을 차고 오토바이 타고 논밭을 누비며 마을공동체를 섬기고, 이끄는 마을 이장이 되고 싶었었다.

어찌보면 그때 당시는 뜬구름 잡는듯한 꿈이였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보면 결과적으로 그 뜬구름 잡던 꿈이 이루어져 벌써 마을이장 4년차를 맞이하니 나는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다.

 

 

마을 적응하기
그런 허황된 꿈을 꾸었던 내가 우여곡절 끝에 귀농을 하고 농촌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귀농초기에는 20대의 새파랗게 젊은 청년 부부로서 마을분들은 한없이 멀고 어려웠었다.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마을 어른들은 아버지벌, 할아버지벌 되니 일단 도시 농촌간의 문화적 간격뿐만 아니라, 세대간의 간격 또한 만만치 않았었던것 같다. 거기에 연고없는 경상도땅에 내려와 지역 어르신들의 경상도 사투리대화말을 육십퍼센트 밖에 못이해하니 ?”하며 자꾸 되뭇게 되고, 나중엔 자꾸 되뭇기도 죄송해서 ~ ..”하며 이해한척 그냥 넘겨짚고 넘어가기도 했었다. 마을행사가 있어서 아내랑 같이 마을회관에 가면 나또한 마을 어르신들 틈속에 앉아있는것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참 어려운 자리였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보다도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뜨내기마냥 살아왔던 사람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들어가 살다보니 처음에는 도시 수배자라는 오해까지 샀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해, 한해 마을에서 신뢰를 쌓아가고 마을의 한구성원으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에는 나름의 작은 노력들이 쌓였었던것 같다.

 

첫째, 다른건 몰라도 인사는 잘했다. 흔히 경험담에서 나오듯이 인사만 잘해도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둘째, 이따금 홀로사시는 할머니들의 손발이 되어드렸다. 형광등 갈기부터 장날 함께 모셔다 드리기 등 여력이 되는 한도내에서 도움이 되어드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내가 도움을 더 많이 받은셈이다. 그분들이 우리 텃밭선생님이 되어주셨고, 일꾼들이 되어주셨다.

셋째, 마을 큰행사때 얼굴을 비추고, 마을 공동부역때는 함께 일하고, 눈오는날 집앞 눈치우는 김에 좀 더 마을길도 치웠다. 결과적으로는 마을분들 전체앞에서 존재감을 가장 크게 나타낼수 있는 시간이였던것 같다. 날수로 따지면 일년에 3,4일을 내가 몸담고 있는 마을일에 쓴다고 아예 편하게 생각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반듯한(?) 마을 새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던 계기가 되었다.

넷째, 마을분들 중 내편이 되어줄 몇분을 만들었다. 세부적으로는 마을 2~3분정도와는 좀 친하게 왕래하면서 그분들을 통해 마을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더나아가서 마을과의 관계에서 그분들이 중재 역할을 해주시게 되었다.

다섯째, 내가 밑지고, 내가 양보한다. 그러나 최종경계선을 긋는다. 원주민과 이해관계가 걸렸을땐 일차적으로는 내가 무조건 양보한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슷한 결정들이 같은 상대에게서 반복된다든지, 이러한 내 태도를 상대방이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때는 나름 용기를 내어서 어떤식으로든 상대방에게 내 경계를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내가 좀 더 마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의 노력을 하면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관계는 풀린다. 도시이건 농촌이건 모두 사람사는 곳이고, 진심은 진심으로 결국 받아들여진다고 나는 믿는다.

농촌은 지역 공동체적 사회이기 때문에 좋은 노력이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욕심이든간에 어떤식으로든 돌고 돌아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오게 된다.

 

 

 

마을 이장이 되어

마을에서 6년간의 새마을 지도자를 거쳐 마을 이장이 되었다. 이장이 되고 초기에는 나의 약점을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 잘 알기에 마음이 자꾸 긴장되고 위축되었었다.

나는 연고도 없이 들어온 외지인에다가, 그것도 농촌에선 새파랗게 젊은 나이이고, 거기에 이미 지역에선 되지도 않는 유기농농사 짓는다고 소문이 나있을 정도로 농사로선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가지 중점을 두고 마을일을 추진한 결과 천천히 좋은 평을 얻게되고, 그게 다시 내게 돌아와서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 마을에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강조하고 정보를 최대한 공유했다.

마을 운영회의를 자주 소집하고 투명하게 소소한것까지 합의 끝에 결정하게끔 만들었다. 농촌에는 아직도 목소리 큰사람이 갑이되는 것이 현실이다. 마을 포장공사든 보조사업이든 큰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전히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절차적으로는 많이 공정하게 개선되가고 있다.

* 이장에게 주어지는 알림이나 정보는 기존 게시판과 앰프방송 뿐 아니라 문자서비스를 제공해서 신속하고 누락없이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농촌의 가부장제적 분위기 속 기존의 남성들 위주의 연락망이 아닌 여성분들 연락처까지 모두 포함시킨 마을주소록을 격년으로 갱신해서 배포하고 있다.

* 마을의 동제나 대보름잔치 등 전통행사를 복원하고 마을여행 및 영화감상 등 마을의 화합과 단합을 추구하고 있다.

* 마을 풍물패를 조직하고 풍물강습을 시작해서 마을의 활력을 도모하고 있다.

 

 

마을에 젊은 새로운 식구들이 들어오다.

농촌에 먼저 자리잡고 살아가다보니, 이래저래 인연으로 우리주변으로 새로운 식구들도 많이 자리잡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분들이 연령대가 높은 분들도 있지만, 30~40대 연령의 가족이 몇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분들이 기존에 아이가 있거나, 새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마을의 평균 연령대를 확 낮춰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왼쪽 도표는 현재 우리 마을 인구 분포도인데 60대 이상 어르신층 비율이 당연히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10~50대 유아부터 젊은층 비율도 일반 농촌평균 보다는 높게 되었고, 어느정도 비율적으로도 골고루 배치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어르신 중심이던 주민들의 인식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마을회관이 곧 노인정이라고 생각했던 인식들이 서서히 바뀌어 아기들과 젊은 새댁들이 함께 공유할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퍼지고 있고, ‘마을의 미래자체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른들이 다음세대에 대한 상상을 하고 이야기를 할 정도 분위기는 바뀌게 되었다.

거기에 이 젊은 세대들이 마을행사나 마을부역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줌으로서 마을활력에 크게 기여하는 효과를 갖게 되었다.

 

점점더 마을 분위기가 활기가 생기고 단합도 잘되어져서 그 결과 2015년도 면민체육대회 종합 1, 백화산 축제 마을대항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주시 선정 귀농하기 좋은 마을로 선정되는 일도 생겼다.

 

 

 

지속가능한 정양리를 위하여...

몇일전 마을총회를 했다. 그리고 3년의 마을이장 임기를 마쳤다. 그리고 그날 총회를 통해서 연임에 대한 재신임을 받았다. 그래서 새로운 3년의 이장 임기를 다시 시작한다.

지난 3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마을주민들이 해주셔야겠지만, 내 나름 확신을 갖는것은 이 부족한 이장을 믿어주시고 신뢰해주신다는 것. 그것 하나 부여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2차 이장 임기를 의욕있게 시작해려고 한다.

재신임 받은 후, 2차 이장임기를 시작하면서 이장으로서 나름의 마을에 대한 비전과 포부를 말씀드렸다.

 

"지속가능한 정양리 마을 함께 만들기"

 

1. 균형된 세대 형성과 세대간 교류와 상생을 이루자.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1차적으로는 구성원의 연속성이 있어야한다는것. 지금까지 젊은 가정이 많이 귀농해서 일반농촌보다는 다양한 연령세대층이 형성되어 있다는것이 우리마을의 큰장점인데.. 갓난아기부터 80 어른까지 더욱 골고루 세대가 형성되고 세대간의 교류와 상생이 이루어지는 마을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2. 정양리 마을안에 다양한 품목의 농사를 도전하고 공동체적 수익모델을 찾아보자.

우리 마을 주민들은 거의 전업농으로서 포도농사를 주로 지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몇십년간 그덕분에 소득을 만들며 지역발전을 이루며 잘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그러한 시대도 한계점에 온것같다. 무분별한 수입개방과 국가적 저성장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의 주소득원인 포도 작물의 시장가격은 하락세로 고질적인 상태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속에서 우리가 눈을 돌려 자급을 기본으로 한 다양한 품목의 농사들도 도전해보고, 그러한 다양한 품목을 가지고 마을기업 형태의 공동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들어 보는것도 대안이 될수있겠다.

 

3. 자급 자족 형태의 마을 공동체를 함께 만들자.

마을공동체 안에서 서로 누리고 즐길수 있는 문화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보자. 기존에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대보름잔치 같은 마을전통행사를 더 적극적으로 살리고, 새로 조직된 마을 풍물패도 더 열심히 배워보자.

거기에 작은 사랑방 모임들 (아기엄마들 모임이나 독서 모임, 바느질 모임 등등)을 필요에 따라 필요한 사람들이 만들어 보자.

 

농번기를 중심으로 한 마을 식당, 마을 밥상도 구상하고 조율중에 있다. 마을에 나는 생산품으로 자급형 공동식당을 꾸려보는것도 마을내 일자리 창출과 농번기때 가사일 경감 효과, 거기에 마을 공동체성 촉진 등 새로운 마을 활력이 될 것이다.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 

요즘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들다’(이재명 저)라는 문구가 요즘 가슴에 꽃힌다.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 평화, 생태, 공동체 등등 삶의 가치들, 대안적 가치들을 우리가 구호를 외치고 알리고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대안적 가치들을 내 삶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있고, 가장 작은 단위의 기초 공동체인 마을과 지역에서 조금씩 실현해나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실천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언어와 문자로도 변화되지만, 작더라도 살아있는 실체, 모델을 보고 변화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이 꼬리도 아닌 꼬리털 하나 정도 되겠지만, 혹시 아나? 코리털 하나 따갑게 떨어져서 호랑이 몸통을 흔들 수 있을지... 하하.

 

                                                                                                 (2016.1.18.정농회 연수회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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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가족 놀로 가도 되요?

  2. 이영미 2016.01.26 20:35

    페이스북에 링크 걸린것 보고 왔어요. 잘 읽었습니다. 저희 가정도 귀촌한지 4년되어서 아직까지도 마을 어른들 눈치 살피며 지냅니다. 앞서가신 선배님 덕분에 힘내서 부지런히 따라가겠습니다. 언젠가 정농회 연수회에서 뵈면 인사 드릴게요.

상농은 토양을 가꾸고 하농은 열매만 가꾼다

2015. 9. 6. 06:38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2011년, 겨울의 일이다.

겨울을 맞이하는 그해 겨울, 나는 포도밭에서 일이 바빴다. 포도밭의 포도나무를 베고, 가설을 철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해 겨울 우리 포도나무들이 동해로 많이 얼어죽었다. 그저 몇나무 죽은 것이 아니라 포도밭 한밭떼기 대부분 나무들이 동해피해를 입었다.

그 해봄, 새순이 나오지 않는 포도나무들을 바라보며 농부로서 마음이 참담했다.

왜 우리 포도나무들이 추운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많이 얼어죽었을까?

외부적 요인으로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날씨 이유도 있고, 우리 포도나무들이 20년이 넘은 고령의 나이 였기에 더 피해가 유난했던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귀농해서 십여년간 나름 유기농을 한다고 했던 자부심마저 내려놓고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물음앞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람은 절벽끝에서 진지해지고, 솔직해진다고... 폐농에 가까운 위기 앞에서 다시 농사의 근본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성찰의 시간이 주어졌다.

 

농부로서 창피한 말이지만, 작물이 추위에 쉽게 얼어죽는다는 것은 작물이 건강하지 못하고, 면역력이 약하다는 이야기일것이다. 그리고 작물의 건강성은 결국 토양의 건강성과 직결된다. '건강한 땅'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땅', '지력이 높은 땅'이라는 말과 연결되는 말일것이다.

내 농사방식도 돌아보면 건강한 땅을 만드는 노력보다는 작물이 필요로하는 양분 공급 위주의 시비방식이였다. 그것이 관행재배하는 분들처럼 화학비료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깻묵,쌀겨,유박 등등 자연재료로 맞춘다는 것이 다를 뿐이였다. 양분공급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흙에 양분이 많다는 것과 땅이 건강하다는 것은 비슷한 말 같지만 촞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이다. 사람으로 보자면 '힘이 센 사람, 몸이 건장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은 연결점이 있는듯 하지만 다른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한가지 반성은 연수가 쌓일수록 점점더 농사가 인스턴트화 되어 간다는 것이였다.

옛어른들 말씀중에 ‘농사의 반은 퇴비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만큼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 직접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다는 의미일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첨단(?) 농업은 간편하고 빠르고 쉽다. 20키로 푸대 거름부터 시작해서 온갖 상품화된 약재들... 관행재배는 물론이고 친환경농업 영역도 그 자재 원료가 천연원료라는 것 외에 별 다를바 없다.

우리가 돈만 주면 쉽고 간편하게 먹을수 있는 인스턴트 온갖 음식들처럼, 농사를 짓는데도 돈만 주면 제품화된 온갖 좋은 자재를 구할수 있다. 그러한 제품화된 자재들이 효과들도 좋고, 좋은점도 있다. 그러나 점점더 쉽게 농사를 짓고 싶어지고, 그래서 점점더 그런것에 의존도가 높아져간다. 그리고 그 결과 농부의 정성과 정신도 점점 희미해져가고, 만드는 과정을 모르니 자재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적용도 부족하고, 더욱이 농사비용도 높아져간다.

 

지금까지 농사지은 소중한 포도밭을 그 해 겨울 어쩔수 없이 철거하면서.. 농부로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고 믿었다. 내 나름의 농사방식에 있어서 중요한 반환점의 시기라고 믿었다.

 

 

건강한 땅을 만들기 위해 내가 찾은 것은 건강한 퇴비였다.

그 다음해부터 포도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나온 포도가지들을 산더미처럼 모았었다. 내 밭에서 나온 양 외에도 마을의 어르신들 밭에서 나오는 포도가지들을 모을수 있을만큼 모아봤다. 그리고 마을 형님과 함께 잔가지 파쇄기를 빌려서 가지들을 파쇄해서 톱밥을 만들었다. 그 톱밥을 주원료로 그밖의 포도즙 짜고 나온 포도즙 찌꺼기들, 뒷간에서 나온 똥과 우사에서 나온 소똥, 쌀겨, 깻묵 등 농사 부산물들, 거기에 산에서 나오는 부엽토를 수분을 맞추며 골고루 섞어서 퇴비를 만들었다.10여일 후, 퇴비속 온도계가 가리키는 눈금과 같이 70도가 넘는 호기성 고온발효를 하고, 퇴비속에는 하얗게 방선균들이 번식한다. 이것은 우리가 메주 띄울때 피는 하얀곰팡이와 같은 것인데 토양속 병원균들을 억제하는 천연 항생물질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곰팡이들이다.

그 이후에 온도가 떨어질때쯤 되어서 열심히 정성껏 3번 뒤집어주다 보면 긴겨울이 지나갔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든 톱밥으로 만든 퇴비는 땅의 유기물함량을 높혀주고, 지력을 높여주는데는 어떠한 재료의 퇴비보다 최고의 퇴비이다. 10년을 내다보고 땅을 살리는 첫단추를 늦게 다시 끼운 셈이다. 그 이후로 올해 봄까지 4년간 톱밥퇴비를 만들어서 밭에 매년 넣고 있다. 한번 만들면 50톤 정도 만들어서 밭에 넣으니.. 300평당 6톤~7톤정도 양은 매년 넣었다.

 

거기에다가 유기농 농사 짓는답시고 포도밭에 풀을 키우며 살고 있다. 마을 어른들은 밭에 풀을 키운다고 기겁을 하시고, 그래서는 농사가 안된다고 훈계도 해주신다. 실질적으로도 비닐멀칭을 한밭과 그냥 초생재배를 한 밭을 비교한 실험 데이터를 보더라도 초생재배한 밭보다 비닐멀칭을 한 밭이 수확량이 평균 30% 더 많다. 포도농사뿐만 아니라 고추농사든 어떤 농사든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대체로 수긍을 할 것이다.

수확량에서 이렇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초생재배를 고집한다.

처음에는 신념과 의지로 풀을 키웠다. 유기농을 삶의 가치로 여긴이상 나에겐 풀을 깎는 제초작업이라는것은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제였다. 흔히 풀과의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풀은 없애야만 하는 나의 적군같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최근들어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3000평 포도밭 풀을 깎으면서도 어쩔수없이 하는일이 아니라 즐겁게 일을 한다. 단순히 풀을 깎는 것이 아니라 토양을 가꾼다고 생각한다. 단지 머리로만의 이해가 아니라 내 온 몸이 그렇게 인식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바뀐 내 모습을 보며 이제사 농부의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더 적극적으로 호밀같은 녹비작물도 이용한다. 가을에 호밀을 밭고랑 사이에다가 매년 뿌렸다. 땅속 깊이 직근으로 뻗는 호밀뿌리를 통해서 딱딱해져 있는 땅속 경반층을 뚫어주고, 호밀뿌리가 죽으면 땅속 깊이 유기물을 공급하고, 공극을 늘려 공기가 들어갈수 있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점은 포도밭 전밭에 호밀을 키우면 포도나무와 양분과 수분 경합이 일어나서 포도나무 수세가 많이 떨어진다. 특히 나무가 어린 나무일수록 더욱 심하다. 그래서 나같은 경우는 호밀 씨앗을 뿌릴 때 밭 고랑 사이에다가 줄뿌림 형식으로 뿌려서 나무와 최대한 간격을 띄어주고, 나머지 이랑에는 자연초생으로 자연스럽게 온갖 풀을 키운다.

 

또한 요즘 들어 나는 삶 주변에서 구할수 있는 것들로 내 농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직접 만들어쓰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지금의 대부분 농사방식은 제품화 되어있는 자재들을 쉽게 사다 쓰는 인스턴트 농사가 대세이다. 돈만 주면 우리가 유기농 된장까지 쉽게 사서 식탁을 차릴수 있는 것과 같이, 돈만 주면 친환경 농자재들도 쉽게 구할수 있다. 쉽고 간편한 것에 길들여진 나의 농심... 이제 직접 콩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드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나의 농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재들을 내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만드는 습관을 붙이고 있다.

퇴비를 시작으로 온갖 농사부산물로 만드는 천연액비, 천연 살균제, 살충제까지... 가능한한 내가 만들어 쓸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매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한두해만에 농사가 갑자기 잘되거나 하진 않을것이다. 사람몸의 체질이 좋은 음식 몇일 먹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5년, 10년이 지나서... 서서히 건강해지고 온전해진 땅은 분명히 농부에게 건강한 농산물로 보답해 줄 것이다.

구체적인 데이터로도 토양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매년 토양시비처방서를 통해서 토양의 변화를 체크하고 있는데, 매년 토양의 유기물 함량이 증가하고 있다.

내가 농사짓고 있는 포도밭을 2006년도에 구입을 했는데, 처음 검사 했을 때 우리나라 평균 유기물함량인 2%였었다. 그러한 땅이 목질퇴비와 초생재배로 인해서 2011년 4.5%, 2013년 5.5%, 2014년 5.8%, 올해 2015년는 6.4%까지 올라갔다.

이 수치들로 나타나는 토양 유기물들이 좀더 토양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서 토양의 부숙으로 변화되고 토양화 된다면 정말 내가 바라는 건강한 토양을 멀지않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집 거실에 액자로 글 한귀가 붙어있다.

‘상농은 토양을 가꾸고, 하농은 열매만 가꾼다.’

어찌보면 커다란 탐스러운 열매를 만들려고 하는것, 더 많은 열매양을 수확할려고 하는 것은 농사꾼이면 기본적인 바램이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서 열매들을 더 크게, 더 많이 키우려고 비료와 농약 더 나아가 호르몬제까지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바램을 넘어 인간의 욕심이다.

미국 연구자료에 보면 1960년에 재배한 농산물의 영양분과 현대 재배된 농산물의 영양분을 비교한 결과 현재의 농산물의 영양소가 지난 과거에 재배된 농산물의 평균 50%정도에도 못미친다고 한다. 그것은 현대 농업 기술은 더욱 발전했고, 지금의 농산물들이 지난 과거보다 좀 더 외관상으로는 상품성있고 탐스러워졌지만 그 생명력과 영양분은 더 쇠퇴했다는 이야기이고, 위에서 말한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다.

 

유기농을 한다고 하는 나 또한 이러한 물음앞에서는 많이 자유롭진 않을 것이다.

나는 진정 생명력 넘치는 포도를 키우고 있는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해답은 토양에 있다.

 

(2015.농촌과 목회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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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일지 :나만의 기록에서 나눔의 기록으로

2015. 1. 13. 08:52 | Posted by 향유 선린 포도농장 박종관

 

 

나만의 기록에서 나눔의 기록으로

 

 

                                                                                          2015.1.    박종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나의 영농 일지는 올해 쓰기 시작한 영농 일지까지 굳이 따지자면 열여덟 권이 있다. 귀농의 짬밥(?)을 드러내주는 계급장 같아서 뿌듯할 것 같지만, 막상 나의 영농 일지 서랍을 열어보면 심란하기 그지없다.

흔하고 흔한 농협에서 준 영농 일지부터 시작해서 종류도 크기도 가지가지. 귀농 초기에는 아무래도 기록할 내용이 많다 보니, 농협 영농 일지 같은 형식을 많이 썼다. 그러다가 어떤 해에는 3년 영농 일지도 써보았는데 한 면에 3년치 같은 날 기록을 견주며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한 면에 6일 정도분의 기록밖에 쓸 수가 없어서 큰 흐름의 연간 비교가 막상 어려웠던 한계가 아쉬웠다. 그러다가 업체나 기업에서 주는 갖가지 다이어리들도 써보고, 어느 해에는 최대한 휴대하기 편하게 작은 수첩에도 적어보았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은 양지사의 하이플랜k8이라는 달력노트를 쓰고 있는데, 노트를 펼치면 에이쓰리(A3) 종이 크기의 제법 큰 한 달치 칸이 쳐져 있고, 열두 달 페이지가 끝난 뒤에 약간의 노트 페이지가 붙어 있다. 날마다 많은 양을 기록하기 힘든 단점은 있지만, 한 면에 한 달이 눈에 다 들어와서 전체 안목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어서 몇 년 동안 잘 애용해왔다. 특히 쓸 내용이 많은 귀농 초기를 지나 귀농 수년이 흐르면서 농사일의 내용도 해마다 되풀이되고, 차츰 기록이 귀찮기도 할 때쯤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형태여서 최근에 계속 써왔다.

아무튼 짧지 않은 농사 햇수에도, 해마다 영농 일지 양식과 크기도 제각각 주먹구구식이고 거기에 해를 거듭할수록 기록하는 성의도 줄어드는 요즘, 2015년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올해는 어떻게 기록을 할 것인가가 숙제처럼 남아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귀농통문지난호 특집인 농사 일지는 나의 오랜 숙제를 정리하는 데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 네 분 저자들의 경험담이 모두 특색있고 나름대로 배울 것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전업농인 나에게 더욱 감명있게 다가온 글이 김진강 님의 영농 일지 작성기였다. 저자 특유의 농사 일상과 정보에 대한 꼼꼼하고 체계적인 메모와 정리도 인상적이었지만,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가장 큰 것은 저자 자신의 농사 기록들을 명확하게 데이터로 만들고 자료로 만드는 데 있었다.

왜 농사 기록들을 데이터화하고 자료화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것은 저자가 말한 대로 영농 일지는 지나간 것의 기록의 의미를 넘어 지금 현재에 가장 필요하고 정확한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농사 일상의 기록은 비록 주먹구구식이긴 했지만 오랫동안 해왔던 터다. 그러나 그것이 해마다 한 권 한 권 끝나는 것에서 멈추었고, 기껏해야 지난해 이맘때쯤 뭐 했나 궁금해서 영농 일지를 이따금 들춰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한 해 영농 일지 한 권이 마무리되면서 그 안의 수많은 기록을 수치화하고 정보화하고, 그런 정보들을 해마다 쌓아서 하나의 흐름으로 잡아보지는 못해왔다. 그 정보들의 흐름이 바로 개인의 농사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인데 말이다. 물론 농사라는 특성상 수치화하고 정보화하지 못하는 영역은 엄연히 존재하기에 농사의 그런 가치 영역은 따로 일기나 회고록 같은 형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정말 돌아보고 배운 것이 있다면 오히려 지금까지 가치적인 정리는 잘 했지만, 정확한 수치와 자료들을 근거로 내 개인의 농사 역사를 정리해보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영농 일지의 뽕을 뽑다

올해 초 내 삶의 화두가 영농 일지에 이왕 꽂힌 김에 판을 좀 키워서, 지역의 내가 속한 귀농 모임에서 영농 일지를 주제로 같이 모이는 것을 준비했다. 세 번에 걸쳐 모였는데, 첫 모임 때 앞에서 말한 귀농통문의 지난호 저자인 김진강 님을 초대해서 농사꾼이 들려주는 영농 일지 기똥차게 쓰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회를 열었다. 손수 몇 년 동안 써왔던 수기 영농 일지뿐만 아니라 해마다 데이터화한 엑셀 자료까지 보여주면서, 지면으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세밀한 이야기까지 더했고, 구체 농사에 관련된 수입·지출·결산 부분까지 가감없이 이야기해주셨다. 강의에 참석한 분들은 갓 귀농한 몇 달 차 귀농자부터 10년이 넘는 귀농자까지 다양했고 저마다 다양한 형태로 영농 일지를 써왔던 분들인데 그분들의 공감과 반응은 놀라울 만큼 좋았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우리들의 영농 일지라는 제목으로 우리 모임에서 꼼꼼하게 영농 일지를 써왔던 회원들 네 사람에게 사례 발표를 부탁했다. 첫 번 모임으로 영농 일지에 대한 동기 부여는 충분히 된 것 같았지만, 김진강 님은 다양한 밭작물 중심의 농사 형태인데 반해, 우리 지역 특성상 포도 농사를 중심으로 과수작목에 집중되어 있고 좀더 우리 지역과 우리 작목에 어울리는 영농 일지 형태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네 사람의 영농 일지 발표 또한 영농 일지 하나 가지고도 정말 다양한 관점과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우리에게 어울리는 영농 일지 형태를 찾는 중요한 소재들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두 번의 모임을 함으로써 정리된 것은, 수기 영농 일지는 하루하루 성실히 써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나 모바일 기술이 발전하고 요긴하다고 해도 손으로 쓰는 기록의 중요성은 줄어들 수 없다. 그리고 그 기록은 나중에 데이터화하고 자료화하는 데 가장 기초 자료이기 때문에 버릇을 들여서 날마다 써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핸드폰으로 그때그때 영농 사진들을 찍어 놓으면 더 훌륭한 자료가 된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고 나서 틈틈이 시간이 날 때 엑셀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자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최종으로는 연말에 엑셀 내용을 취합하고 분류해서 한 해의 농사 보고서 형태로 만들면 좋다는 것. 그래야 그런 자료들이 쌓여서 개인 농사 역사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 모임은 엑셀을 이용한 포도농사 영농 일지 매뉴얼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이전 모임의 취합 결정판이다. 우리 지역에 갓 귀농해서 우리 모임에 새로 가입한 전 귀농본부 활동가였던 이은주 님이 맡았다. 5년 동안 귀농본부에서 갈고 닦았던 자료화 기술과 엑셀 활용을 기반으로 첫 번째, 두 번째 모임에서 나왔던 영농 일지 작성의 중요한 소재들을 종합해서 우리 지역에 최적화한 영농 일지 매뉴얼을 엑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다 같이 배우기로 했다. 지역의 정보화마을 컴퓨터 교육장을 빌려서 저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며 배울 계획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 이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전국귀농운동본부 누리집에 첨부파일로 붙여 놓겠으니 내려받기를 하시면 될 것 같다.

 

영농 일지 나눔 모임

앞에서 말한 귀농 모임 소개를 하고 싶다. 지난해 2014년도 초에 중화지역 유기농 공부방이라는 지역 귀농자 모임을 하나 꾸렸다. 공부방 모임이라는 이름이 내포하듯이 소그룹 형태의 모임을 지향하며, 2회 모여서 개인의 영농 일지와 영농 사진 들을 서로 나누고, 필요한 농사 주제를 정해서 공부를 하는 모임이다. 모임을 꾸리게 된 계기는 일단 먼저 귀농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고, 귀농자의 한 사람으로서 주위에 농사와 관련된 교육 모임들에 참석해보면 대부분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집단교육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아쉬웠다. 이러한 교육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상호교류하지 못하고 일방으로 내용을 전달받는 측면이 있고, 개인의 실제 농사 실력과 형편에 맞는 단계적 실전지침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특히 유기농을 희망하는 귀농자들이 많지만, 특히 과수작목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구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몰라 마음으로만 희망하고 막연한 미래로 미루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한계와 어려움을 풀 수 있는 것은 큰 모임이 아니라 작은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작아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모임. 서로의 눈높이에서 서로 이끌어줄 수 있는 모임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통의 가장 중요한 소재는 저마다의 농사 현장에서 얻어진 경험의 결과물인 영농 일지였다.

영농 일지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소재라고들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훌륭한 공동체적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영농 일지가 나만의 기록에서 나눔의 기록으로 바뀌었을 때 모임에 얼마나 큰 촉매제가 되는지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경험할 수 있었다. 귀농자라는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시행착오들과 그 결과물들이 고스란히 서로 나누어질 때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과거 이야기도 되고, 현재의 내 모습도 되고, 앞으로의 내 모습도 되는 묘하게 끈적한 동질감이 형성되는것 같았다. 농사란 때를 맞추어 일하는 것이 중요한데, 서로의 농사 일정들을 참고하며 자기 농사 시기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농사 형편들을 나누다가 일이 너무 뒤처진 벗이 있으면 시간이 되는 이들이 품앗이로 거들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신뢰가 바탕이 되자 공부할 때 이론과 기술적인 내용도 깊이있게 진행될 수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농사 현장과 동떨어진 농사 이론과 기술만을 공부했다면 평범한 공부 모임으로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영농 일지를 매개로 삶을 공유하며, 함께 모여 공부하고, 유기농자재도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배울 수 있는 여러 현장도 함께 탐방하면서 점점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회원 가운데 두 가족이 포도로 무농약 인증을 받았고, 올해도 두 가족 정도가 준비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영농조합이나 협동조합으로 가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급하게 가고 싶지 않고 지금 당장은 좀더 내실을 기하고 싶다.

우리가 모인 지 일 년이 된 요즘, 모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둘레에 함께 참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본으로 작은 소그룹을 지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찌 보면 폐쇄적인 모임이다. 두 가지 가치가 부딪치고 있다. 해결책은 더욱 작게 분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몇 개의 면 단위를 아우르는 지역 단위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면 단위로 더 작게 분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삶과 농사를 더욱 생활로 공유하고 밀착할 수 있는 규모의 작은 모임이 되는 것. 그러면서도 면 단위마다 작은 모임들이 생기는 것이 꿈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임의 밑바탕엔 영농 일지 나눔이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영농 일지가 충실한 나의 기록이 되기를 그리고 이웃들과 나눔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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