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켐벨포도 수확을 마쳤다. 이제사 숨한번 크게 들이쉰다.
올여름, 나름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제야 큰숨한번 내쉰다.
힘들었던 시간속에서는 오히려 입문이 닫혔었는데, 이제야 지나고나니 편하게 이야기할수 있을것같다.
몇 번의 태풍비에 별채집이 물이 발목까지 채여 살림들어내고 들이느라 애먹고,
포도 하우스 비닐들이 반쯤 날라갔고, 논의 벼들은 반정도 쓰러져서 누워버렸다.
50일간의 비로 인해서 조생종 흑바라드 포도들은 곰팡이로 2/3 넘게 수레로 내다버렸었다.
구사일생으로 살려낸 포도들을 겨우 손질해서 판매공지글도 못올리고 예약했던 지인들에게만 판매하고 마쳐야했다.
켐벨포도는 당도가 오르지못해서 소비자들에게 죄스런 마음으로 판매를 겨우 마쳤다.
이제 잠시 쉬었다가 추석마치고 샤인머스켓 포도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샤인으로 만회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될지 조마조마하다.
매년 사연없는 해가 없고, 지나온 길이 쉽지않은 길이였지만 올해는 좀 유난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매년 속으면서도 그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나면 내년엔 좀 낫겠지... 그런 기대와 희망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매년 속으면서 말이다. 하하
올해 아내가 포도 인사말로 쓴 인사말을 붙인다.
읽어볼수록 위안이 되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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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하늘바라기입니다.
농부는 제 할 일을 해놓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날이 맑기를.
적당히 비가 오기를.
햇살은 너무 뜨겁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면서요.
2020년은 코로나19와 오랜 장마와 수해와 폭염과 이어지는 태풍속에서 조금은 지쳐 있습니다.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고 합니다.
농부에게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생계위기인듯도 합니다.
8월의 포도는 곰팡이에게 내어주고,
9월의 포도는 태풍속에서 견뎌내고 있습니다.
10월의 포도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울고 수확을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속은 후련합니다.
이젠 묵묵히 다시 일을 합니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을 잘 알아서 더 이상의 불온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9월의 캠벨포도는 이만큼이라도 버텨주어서 고맙기만하죠.
생명의 신비를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조금은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을 찾아 읽곤 했습니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마지막 기도문에서. 1944년 12월-
오늘은 오늘만큼의 새힘으로,
내일은 내일만큼의 새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도 태풍도 농사도.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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